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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

중세 암흑기에 교회를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광대한 은혜를 부각시키시는 ‘다섯 가지 솔라 사상’을 개혁자들을 통하여 선포케 하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하나의 사슬로 연결된 사상으로 우선 순위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이는 당시 성경보다 자기네 교회의 전통을 강조하였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오류 및 교회의 지도자들이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면서 신비주의를 추구하였던 경험주의를 배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생활의 무오한 법칙이라고 주장하면서, 성경의 무오성과 유일성, 그리고 충분성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을 역사적 정통에 따라 바르게 해석하고, 그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정도라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5대 원리 중의 첫 번째 원리인 ‘오직 성경’ 사상을 이야기할 때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한 슬로건은 진정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이해되고 믿어지는 명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진리를 구원론적인 근거로 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므로 조심해야 하지만, 여하튼 구원 받은 자들 또는 구원 받을 자들이 아니고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의 영역,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구원 받았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성경의 아주 핵심 사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구세주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대한 증거는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이 문제 앞에서 후기 정통 개혁교회, 즉 개신교는 크나큰 자체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직신학이라는 신학 체계를 설정한 후, 온갖 논증과 논리를 동원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또한 확증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두 영역을 설정하고, 후자의 영역에서 성경을 다룹니다. 그렇게 할 때에 주로 ‘성경의 영감론(the Inspiration of Scripture)’이라는 주제 하에 ‘영감의 성질(The Nature of Inspiration)’로서는 기계적 영감(Mechanical inspiration)과 동력적 영감(Dynamic inspiration) 및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에 대해 다루고, ‘영감의 범위(The Extent of Inspiration)’로서는 부분적 영감(Partial inspiration) 및 완전 영감(Plenary inspiration)에 대해 다룹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성경의 완전성을 확증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조직신학에서의 성경론은 학자들마다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러한 구조입니다.


상기한 칼빈주의의 입장과는 달리, 정작 칼빈 자신의 방법론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가르칠 때에 먼저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가 기독교강요 제7장에 부여한 제목은 상당히 중요한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반드시 성신의 증거로 확증되어야 하고, 그래야 그 권위는 확실한 것으로 확립될 수 있다. 성경의 신빙성이 교회의 판단에 좌우된다는 것은 사악한 거짓말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칼빈은 제6장에서 성경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다!’라는 전제를 선포한 후 제7장에서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현재 하늘로부터 매일의 신탁(神託)이 내려오지 않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경 안에서 그의 진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라고 한 후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을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경을 인정한다고 할 때의 참된 의미는, 교회가 성경을 확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동안 교회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자증해 나온 데 대한 ‘복종과 고백’이라고 역설하려는 것이 칼빈의 의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는 사실에 그 자체에서 권위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관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이 고수해야 할 입장을 설파했습니다. 그것은 성신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자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나 방법으로든 성경을 증거나 이성에 종속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단언하는데, 그 이유는 비록 성경이 자체의 위엄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성신의 확증이 있어야만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법이고, 이 감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견고한 확신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비로소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불을 태우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자증하지만,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성신의 내적 증거’가 뒤따른다고 한 바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칼빈이 보기에, 성경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성신의 증거로써 확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점을 고수하자. 즉 성신에 의해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을 진심으로 의지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사실상 스스로 확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신의 증거를 받았기 때문에 성경 안에 하나님의 확실한 신적 위엄의 능력이 살아서 숨쉬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신의 능력에 의해서 우리는 의식적이며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로되, 인간적인 의지나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신에 의해서 보다 더 생생하고 효과 있게 순종하도록 마음이 끌리게 되며 또한 순종의 불을 태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 단계에서 칼빈의 특유의 계시 신학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그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는 신앙은 필히 교회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는 것을 전제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혹 믿는 자들의 숫자가 적다는 사실에서 혼란을 느낄 때에는, 역으로 ‘하나님의 비밀은 오직 받은 자들만의 것’(마 13:11)이라는 사실을 깨닫자고 힘주어 선포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성경은 교회를 낳고, 교회는 성경을 보호합니다. 이 명제 사이에 해석이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해석이라는 다리는 조직신학으로써 건설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고백신학, 즉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의 제반 신앙고백으로써 건설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신교가 아닌 보다 더 범위를 좁혀서 개혁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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