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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의 음악 문제

최종 수정일: 2023년 7월 3일



한 지역의 개체 교회에서 모든 교회원들이 모여서 드리는 공적 예배는 신앙 표현의 총체요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설교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른 요소들도 중요한데, 그 중에는 음악과 노래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악을 우리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악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죄로 전락하고 마는데, 음악이나 노래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음악의 직접적인 타락, 또는 다른 도덕적 타락에 결부되어 있는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음악이 예배에까지 침투하여 버젓이 타락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10장에서 그릇된 예배의 세 가지 유형을 소개하였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예배인데(24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을 가르치는 예배요(마 15:9; 사 29:13-14),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가르치는 예배로서(골 2:4-8),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실질적으로 그 시대의 정신과 민족적 전통 또는 교파적 전통(장로의 유전) 등등의 인간의 생각을 가르치는 왜곡된 예배입니다. 둘째는, 바리새인의 예배입니다(26절). 칼빈은 ‘바리새인의 누룩’(마 16:6; 23:3)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율법의 해석자인 모세의 자리에 앉아 권위를 주장하면서 무리한 실천을 강요하고, 스스로는 본을 보이지 않으면서 단지 지식만 팔고 있는 삯꾼이 인도하는 예배에 대해 바리새인의 예배라고 규정합니다. 셋째는, 연극적 예배입니다(29절). 분위기와 의식은 우아하고 화려하며 음악과 설교는 장엄한 듯이 보이지만, 인도자는 연극 배우와 같이 연기에만 치중함에 따라 신의식과 외경심이 결여되어 있고, 순전히 인간의 기분과 평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소위 ‘멋있는 예배’입니다. 따라서 교인들은 예배를 즐기기만 할 뿐으로, 하나님께 대한 진지한 경외심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예배이지만, 연극을 관람하거나 음악회에 참석하거나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또는 훌륭한 강의를 듣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특히 현대에 들어와 이런 유의 연극적 예배는 ‘찬양과 경배’라는 이름 하에 주로 진행되는데, 사실상 찬송이 거의 인간의 음악적 즐거움을 위한 쇼와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중세기 교회의 개혁은 사실상 예배의 개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예배의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인도하는 것이 개혁된 교회 예배의 특징이어서 다른 교파들에 비해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복잡하고 정교한 예배 의식에 익숙한 다른 교회 성도들이 개혁된 교회의 예배에 처음 참석할 경우, 예배 순서가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성은 개혁된 교회에 걸맞은 면모입니다. 그러면서도 예배가 진행되는 내내 엄숙한 위엄과 권위는 충만하게 유지됩니다.


개혁된 교회의 예배에서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예배시에 성가대(聖歌隊)를 운영하지 않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교파들은 대부분 음악성이 좋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뽑아서 성가대를 구성한 후, 예배시에 회중을 대표하여 합창하는 순서를 갖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위 노래 잘한다는 평을 받는 특정 성악가를 앞에 세워 독창하게 하거나, 무슨 무슨 명칭의 중창들로서 특별 찬송을 하게도 합니다. 하지만 개혁된 교회는 성경적 예배의 원리에 따라 그런 식의 찬송을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이러한 전통이 정착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예배는 통상 성직자 중심이었고, 신자들은 다소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찬송을 드리는 일도 특별히 음악성이 좋은 사람들을 뽑아 구성한 성가대만의 특권이었고, 일반 신자들은 침묵하면서 청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단지 예배에 참석한 데서 만족하였거나, 단지 예배를 보고 감상하는 구경꾼 정도였을 뿐입니다. 종교개혁은 이와 같은 특정인 중심의 예배를 개혁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찬송에 있어서, 특정 성가대만이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들 모두가 자신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유산 속에서 개혁된 교회는 공적 예배시에 모든 성도들이 함께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개혁된 교회가 예배시에 성가대를 세우지 않는 것에 대해 교회생활의 원칙 차원에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건전한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예배에서의 노래 문제와 관련해서는 성가대 도입을 억제하는 편에 서 왔습니다. 중요한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본다면, 첫째, 성가대의 찬양 때문에 회중이 함께 찬송하는 빈도가 줄어들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교리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수준 이하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곡이 참신하고 정서적으로 매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가대에 의해 예배시에 불리워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세상적으로 유명한 독창가나 성가대를 운영할 경우 예배에서 청중들이 일종의 관람자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당으로 온다기보다는 순전히 수준 높은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오기도 합니다. 끝으로, 성가대의 질을 높이려는 욕심에 이끌려, 신앙적으로 합당치 못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들은 공식적으로 급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지휘자나 성악가 및 악기 연주자들을 기용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가 중세의 타락한 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혁된 교회의 단순한 예배의 특징 중의 또 하나는 찬송을 부르되 주로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시편으로 찬송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찬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따라 시편 찬송가를 자작하여 전체 150편을 다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전통은 일찍이 칼빈의 제네바 교회에서 도입한 예배와 찬송에 따른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이 시편 찬송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언약의 노래로 확정하여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목회하면서 시편 찬송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는데 완전한 시편 찬송이 출판된 것은 그의 생애가 거의 만년에 이른 1562년이었습니다. 성경의 시편은 예배 찬송에 사용하기에 적격인 노래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사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혁된 교회는 어떤 유명한 신자 시인 또는 작사자가 지은 찬송이라 할지라도 이 시편 찬송에는 비할 바 되지 못한다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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