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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 간의 상호 동등성

최종 수정일: 2023년 7월 3일



개혁된 교회는 목사들 상호 간에 권리가 동등하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목사의 전형이랄 수 있는 구약 선지자들의 세계를 보면, 요즘 같이 마치 ‘사장 목사 밑에 부장 목사들이 있는 모습’(?)은 어떤 경우에도 없습니다. 또한 보편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시대였다고 볼 수 있는 사사시대의 경우를 보더라도, 어느 한 지파가 다른 지파 위에 군림하거나 밑에 종속된 경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정치 제74조에서는 “어느 교회라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다른 교회들 위에 군림하지 못하며, 어떤 직분도 다른 직분 위에 군림하지 못한다(No church shall in any way lord it over other churches, no office-bearer over other office-bearers.).”라고 해놓았습니다. 이것은 교권주의를 경계하고 반대하는 개혁된 교회의 정치질서의 독특한 성격입니다. 게다가 이 조항은 교회 정치질서의 핵심원리를 제공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이 조항을 마지막 항목에 둠으로써 교회정치질서 전체를 포괄하는 결론의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성을 갖게 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목사가 소위 갑(甲)질을 하는 경우와 관련하여, 이를 무거운 벌칙으로 다스린다고 제72조에 규정해 놓았습니다. “직분자의 정직 혹은 면직의 근거가 되는 심각하고 중대한 죄들은 다음과 같이 특별하게 명시한다”고 하면서 “... 직분 매매, 직분의 불성실한 유기 혹은 다른 직분의 침해 ... 등이다(.. simony, faithless desertion of office or intrusion upon that of another ...).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다른 직분의 침해에 대해 “거짓 교리 혹은 이단, 공적인 파당행위, 신성모독, 거짓 맹세, 간음, 음란, 도둑질, 폭력 행위, 술 중독, 싸움, 불의한 재산증식,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의 다른 회원들에 관하여 출교의 이유에 해당되는 그와 같은 모든 죄와 심각한 악행들”과 같은 차원에서 취급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개혁된 교회의 목사관은 당시 변질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직분관을 성경적인 입장에서 개혁한 데서 왔습니다. 일찍부터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 1인 지배 체제를 도입하면서 감독(Bishop)을 사도들의 후계자로 보았고, 장로(Presbyter)에 대해서는 감독의 보조자 정도로 생각하면서, 이들을 일반적으로 사제(Priest)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직분관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마치 군대의 계급 체계와도 같은 교권 체제를 이루게 되었고, 감독은 사제를 지배하게 되는 권세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개혁된 교회의 창설자 존 칼빈은 이런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권 체제가 비성경적이라는 판단 하에 교회의 직분을 개혁하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성경에서의 감독과 장로는 같은 직분을 가리키는 동의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률적으로 다 목사를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로마 카톨릭 교회는 목사라는 칭호 자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에 목사직분을 회복시켰는데, 성경의 중심 사상에서 볼 때 목사 세계에 계급이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한 목사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다른 목사를 지배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목사직에 대한 칼빈의 사상이 개혁된 교회에서는 중요한 원리로 자리를 잡게 되어 지금까지 수백 년에 걸쳐 목사들 간의 동등권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런 목사관에 따라 개혁된 교회 안에는 원목과 부목의 구별이 없습니다. 가령, 원로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젊은 목사가 청빙될 경우, 그가 제아무리 갓 안수 받은 목사라 할지라도 결코 부목사가 아닌 동사 목사로 청빙됩니다. 경험 많은 어른이자 선배 목사이기 때문에 합당한 예우로 존경할 것은 마땅하지만, 직분 수행에 있어서는 권리가 동등한 것입니다. 이 직분상의 동등권 수행은 직책 담당에서 구현되는 것이므로, 항상 공평을 기합니다. 한국 교회 식으로 담임 목사가 주일 설교를 도맡고, 부목사들은 심방, 교육, 사무 등을 맡은 경우는 결코 없는데, 그럴 경우 직분의 동등권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직분자들 간에 상하 관계가 형성되지 않게 하고, 이를 위해서 직무의 편중 현상을 배제하는 것이 개혁된 교회의 특징입니다.


최근에 갑질이라는 유행어가 생겼습니다. 상호 간에 맺는 계약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갑(甲)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을(乙)에게 이런저런 형태로 못된 짓을 하는 폐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는 기본적으로 이런 불평등 관계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어느 성도가 다른 성도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없고, 또한 어느 성도가 다른 성도보다 낮은 위치에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를 이루는 자리에서, 각자 각자가 소중한 것이고, 나름대로 독특한 위치에 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스스로 이러한 관계를 깨트리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주로 목사들 간의 관계, 그리고 직분자들 간의 관계가 잘못되는 데서 나타납니다. 대형교회들은 대체적으로 담임 목사와 그 밑에 여러 명의 부목사들을 두는 체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 심지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등의 그토록 많은 성도들을 관리(?)하자면, 달리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늘 강조하지만, 대형교회라는 것은 이미 그 존재 자체만으로 잘못된 교회로서 타락의 전위대 노릇을 하기 마련인데, 이는 교회의 표지와 속성을 보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으로 부상하는 것은 목사들 간의 동등성이 파괴되는 현상입니다. 이런 부조화는 소위 지교회라는 이름으로 어미 교회가 개척시킨 교회를 마치 지점처럼 관리하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목사끼리든지 교회끼리든지 간에, 위와 아래가 되어 지시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타락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나 목사들은 결코 갑과 을의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 개혁된 교회의 특성입니다.


이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처음에 어느 한 지역에서 교회가 시작되는 단계부터 인본주의와 교권주의의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형편상, 교회 개척은 필연적 타락이라고 하는 구조적 모순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제도권 하에서는 실낱 같은 희망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암울한 상황입니다. 이 세상 공동체들의 경영 원리와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함이 마땅한 교회 공동체에서, 세상의 방법을 도입하여 교권 체제로써 교회의 질서를 유지해야만 하는 현실은 정말 불행 중의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현하 제도권 하에서의 대형교회는 그 자체로서 타락의 온상일 뿐입니다. 여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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