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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소고 ① 교회론 총론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단체 같아 보이면서도 자칫하면 가장 부정직한 집단이 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부류가 있겠습니까? 나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아 정치 집단과 종교 집단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생선과 정치인은 사흘만 지나면 썩은 냄새가 난다!” 하는 말이 회자되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정치인의 활동 무대는 세상이라고 하는 곳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런데 교회도 그렇게 부정직한 집단이 될 수 있다는 데서, 이 주제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키에르케고르 같은 실존주의 신학자는 “자체적으로 커지고 부유해진 사실 때문에 실상은 도리어 망한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 교회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겠습니까?


그러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입장에서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교회의 정체성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는 것이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교회 개혁 운동을 한창 이끌던 중에 이해하기 힘든 문제에 봉착하여 탄식했다고 합니다. 바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열 사람에게 물어보면, 열 사람 모두가 각기 다른 대답을 한다!”라는 문제였습니다. 학생이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모를 리 없고, 회사원이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모를 리 없겠지만, 유난히 성도들만큼은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가 무엇인지 아는 경우가 드물어 보입니다. 아니 “아예 모른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 대한 정의나 이해는 대체적으로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일 듯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한 바대로 교회를 그렇게 실제로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자신이 속한 단체의 성격이나 본질을 제대로 모르면서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나아가 주도적인 역할까지 하는 모순이 버젓이 상식이 되어 있는 영역은 참으로 교회가 유일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요즈음 교회의 모습은 무익하고 헛된 열심의 난무 속에서 온갖 상업주의가 득세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교회원이면서도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 기괴한 현상의 기저에는, 대체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종교인들처럼 열정만 앞세우는 천박한 종교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 이렇게 표현한 것은 현실을 강조하려 한 때문이지, 그들 모두가 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노파심에서 환언하자면, 성경을 아는 지식은 없는데 열심만 앞세우고 나가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할 수밖에 없다 하는 의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지만(존재성), 그렇게 계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에 대해 무지몽매하다는 의미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동족이 구약 신앙을 계승한 그토록 복된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망해 있는 데 대한 원인으로 “저희가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요”(롬 10:2)라는 분석을 내어 놓았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나 사도 바울이 말한 ‘지식’이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즉 성경을 아는 실력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항간에 성경을 줄줄 외울 정도로 능숙한 사람을 혹 만납니다. 세밀하게 살펴서 읽는 정독이 아닌 다독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실제로 며칠 밤낮을 성경 읽기만을 하는 그런 세미나도 있어서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성경 읽기만을 주도해 나가는 월간지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매월 말이 되면 다음달의 QT집들이 기독교 서점 신간 코너에 줄지어 진열됩니다. 기독교인 가정치고 성경책 대여섯 권 없는 집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기독교 관련 신앙서적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은 정작 제대로 읽고 충분히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그토록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는 왜 이렇게도 빈약하고, 나아가 혼란스럽기까지 한 것입니까?


사실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이 글을 시작하고는 있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도 교회에 대해 딱히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다소 난감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교회를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은 실로 다양하기 그지 없고, 그 깊이와 넓이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적용 문제까지 생각할 경우 가히 무한대의 사고력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교회사의 전통 속에서 교회에 대해 스스로 내린 정의를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교회를 설명하는 일은 지식적으로 얼마나 잘 묘사하느냐의 차원보다는 깨달음의 차원이라는 것을 전제해 두겠습니다.


깨달음의 차원이라는 전제 하에 교회를 정의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교회는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다!” 이것은 필자가 지금까지 약 30여년 동안 나름 성경 교사로 활동하면서 최종적으로 얻게 된 교회에 대한 집약적 표현입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깨달음의 차원 또는 경험적 차원에서 접근해볼 경우 아마도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경우가 혹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할 경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한 탄식은 “내 백성이 교회를 모르므로 망하는도다”라고 이해될 것이고, “저희가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요”는 “저희가 열심이 있으나 교회를 아는 것이 아니요”라는 의미로 이해될 것입니다. 십중팔구 그럴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교회는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러한 지식을 실제적인 신앙생활로써 구현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절묘한 묘사인가를 깨닫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근거는 성도의 생명은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접붙여져 있기 마련이고, 동시에 그러한 사람들끼리도 예외 없이 연합되어 있다는 데 따른 것이로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공동체의 모든 생명활동의 원동력이 되시는 데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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